쓰러진 택시기사 두고 떠난 승객… 처벌 가능할까

by 관리자 posted Dec 1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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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76도3419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어도 법적으로 처벌규정은 없어

#도덕적의무 #유기 #응급의료에관한법률 #착한사마리안법 #택시기사방치승객 #택시기사심장마비

최근 심장마비로 쓰러진 택시 기사를 버려두고 떠나 끝내 숨지도록 방치한 승객들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지만 이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과 함께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 도입하고 있는 '착한 사마리아인 법'을 우리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인데, 성경 속에서 강도를 당해 심각한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사람을 치료하는 것으로 묘사된 선한 사마리아인에게서 따온 말이다.

지난 25일 오전 대전에서 택시를 몰던 기사 A(62)씨는 승객 2명을 태우고 운행 중 심장마비 증세로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운전자인 A씨가 쓰러지면서 차량은 앞 차와 추돌해 멈춰섰다. 하지만 이후 승객들의 행동은 큰 충격을 줬다. 이들은 119에 구조 신고도 하지 않고 트렁크에서 골프 가방 등 짐을 꺼낸 뒤 곧바로 다른 택시를 잡아타고 현장을 떠나버렸다. 의식을 잃은 채 방치됐던 A씨는 다른 시민의 신고로 뒤늦게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승객들은 "일본으로 출국하기 위해 공항으로 가야 했는데 공항버스 출발 시간이 촉박해 현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매정한 승객들을 처벌할 방법은 없다. 우리나라에는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지 않는 경우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이 없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판례도 단순히 짧은 시간 동행한 사실만으로 상대방에 대한 법적인 보호의무를 인정하지는 않고 있다. 추운 겨울 술을 마시고 함께 걸어가다 한 사람이 제방밑으로 굴러 떨어져 부상을 입고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데도 혼자 집으로 가버려 낙상한 동행자가 저체온증 등으로 사망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76도3419).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유기죄의 범행 주체가 되려면 피해자에 대한 구호의무가 있어야 하는데 승객이 단순히 택시를 탔다고 해서 택시기사를 구조할 의무가 당연히 인정되지는 않는다"며 "도덕적으로는 비난할 수 있지만 법적으로 처벌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5조 1항이 '누구든지 응급환자를 발견하면 즉시 응급의료기관등에 신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 같은 신고의무를 위반했다고 해도 처벌 규정은 없다. 의료분야 전문가인 성용배(39·사법연수원 39기) 법무법인 정&파트너스 변호사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상 응급환자에 대한 신고의무 주체는 '누구든지'이기 때문에 승객들도 신고의무가 있지만 의무를 지키지 않더라도 그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며 "심폐소생술까지는 아니더라도 119에 신고를 하는 등 최소한의 노력을 의무화하고 적어도 과태료 정도의 처벌 규정을 두는 입법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자기 또는 제3자의 위험을 초래함이 없이 개인적 행동에 의해 또는 구조의 요청에 의해 위험에 처한 타인을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의로 이를 하지 아니한 자는 5년의 구금형 및 7만5000유로(우리돈 9500여만원)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의 착한 사마리아인 법을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6월 박성중 새누리당 의원이 '재난 또는 범죄로 발생한 상해·질병 또는 장애로 인해 구조가 필요한 자를 구조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구조하지 아니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의 '구조 불이행죄'를 도입하는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상태다.

하지만 개인의 도덕적·윤리적 판단에 맡길 문제를 무조건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 것은 또다른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민만기(56·20기)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도덕적 의무와 법적 의무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택시에 탔다거나 우연히 동행했다는 것만으로 어떤 법적인 책임을 지운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며 "도덕적 의무를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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