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고속도로상에서의 '신뢰의 원칙' 재확인
고속도로를 과속으로 운전하다 무단횡단하는 행인을 치어 숨지게 했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운전자에게 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일반도로에서와는 달리 보행자의 진입이 금지되고 차량이 고속으로 주행하는 고속도로에서는 '신뢰의 원칙'이 적용된다는 기존 대법원 입장(☞98다5135등)을 재확인한 것이다.
대법원 제1부(주심 徐晟 대법관)는 5일 고속도로에서 보행자 사망사고를 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윤모씨(32)에 대한 상고심(☞2000도2671)에서 벌금 3백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일반적으로 고속도로 운전자에게는 무단횡단하는 보행자가 있을 것까지 예견하고 충돌사고에 대비해 운전할 주의의무가 없다"며 "다만, 보행자의 무단횡단을 미리 예상할 수 있거나 급제동해 보행자와의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운전자의 과실을 인정할 수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피고인이 야간에 인터체인지 부근에서 제한속도를 20㎞나 초과해 운전하던 중 사고를 낸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특별한 사정'에 해당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윤씨는 지난해 5월 승용차를 몰고 호남고속도로 하행선 정읍인터체인지 부근을 지나다 무단횡단하던 하모씨(사고당시 52세·여)를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는 무죄, 2심에서는 벌금 3백만원을 각각 선고받고 상고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