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능력 따른 일실수입 산정 때 고려 가능하지만
‘정신적 손해’ 위자료 차등지급 놓고 논쟁 재점화
교통사고로 사망한 장애인에 대한 배상액 책정과정에서 '위자료'를 비장애인에 비해 절반 가량만 인정한 판결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노동능력상실률 등이 고려되는 일실수입(사고가 없었더라면 장래 얻을 수 있었을 소득) 산정에서는 기존의 장애 정도 등이 고려될 수 있지만, 정신적 손해에 해당하는 위자료까지 비장애인과 차등을 두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 의견이 분분하다.
1급 지체장애인인 김모(사망 당시 65세)씨는 2017년 10월 경기도 고양시 한 빌라 앞 노상에서 A씨가 몰던 화물차에 치였다. A씨가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다 길을 건너던 김씨를 보지 못해 발생한 일이었다. 김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이듬해 5월 결국 사망했다. 이에 김씨의 자녀인 정모씨(소송대리인 박병철 변호사)는 2018년 7월 A씨 차량의 보험사인 롯데손해보험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청구소송(2018가단5151138)을 냈다.
민사 단독판사가 맡은 1심은 운전자 A씨의 과실을 90%로 책정했다. 그런데 위자료를 산정하면서 "사고의 경위, 망인(김씨)의 나이 및 과실 정도, 기왕장해, 형사사건에서 지급된 합의금 액수 등 제반사정을 참작해 망인의 위자료는 5000만원, 유족인 정씨에 대한 위자료는 1000만원으로 정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사망한 김씨에 대한 위자료 액수는 법원 기준을 고려할 때 절반에 해당하는 액수다. 현재 법원은 여러 사건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위자료를 정액화해 판단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2018년부터 교통사고 사망 위자료 기준 금액을 기존 8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했다. 이를 고려하면 1심이 김씨 본인에 대한 위자료를 절반으로 감액한 셈이다. 특히 1심은 '기왕장해'를 언급하며 김씨가 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을 위자료 감액사유로 삼았다.
1심 ‘기왕장해’ 언급하며
감액에 “부당한 차별” 항소
정씨 측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위자료를 감액하는 것은 부당한 차별"이라며 항소했다. 손해배상액 가운데 일실수입 산정 등에서는 기존 장애를 고려할 수도 있지만, 정신적 손해에 해당하는 위자료에서까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금액을 깎을 합리적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항소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7-3부는 최근 판결을 선고하면서 1심에서 언급된 '기왕장해'라는 문구만 쓰지 않은 채 김씨에 대한 위자료 금액을 5000만원으로 그대로 유지했다(2019나65087). 정씨 측이 주장한 '감액 사유의 부당성'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유를 설시하지 않았다.
2심도 별다른 설시 없이 감액
대법원 판단에 주목
이와 달리 지난 2006년 서울고법은 교통사고로 사망한 장애인 손모씨(뇌병변 3급)의 유족들이 가해차량 보험사인 삼성화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05나45614)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위자료를 차별한 것은 부당하므로 비장애인과 같은 금액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당시 재판부는 "교통사고로 사람이 사망한 경우 그 정신적 고통은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동등한데도 장애인 사망자에 대해 일실수입 뿐 아니라 위자료까지 노동능력상실률을 감안하는 것은 불합리한 차별행위에 해당한다"면서 "손씨를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보고 과실률 등만으로 계산한 위자료 3400만원을 지급하라"고 밝혔다.
이 사건은 당시 보험사와 유족들이 모두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씨와 소송대리인인 박 변호사가 상고할 예정이어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어떻게 나올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