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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판 도난신고 접수 차량
신분 확인하던 중 100m 주행
영장 발부 밝힐 시간 여유 없어
여의치 않으면 제압한 뒤 해야

 

도주 우려가 있는 피의자에게 경찰이 ‘미란다 원칙’과 체포영장 발부 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채 유형력을 행사해도 적법한 공무집행이라는 판결이 지난해 대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피의사실 사전 고지의 예외’에 해당된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대마·향정),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치상) 등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추징금 535만 원을 명령한 원심 판결을 지난해 9월 확정했다(2023도9870).

 

A 씨는 2015년 8월 인천 미추홀구의 한 도로를 승용차로 운전하다 경찰 단속에 걸렸다. 차 번호판 도난신고가 접수돼 있고 자동차 의무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다는 이유였다. 차량 운전석 옆에 서서 신분을 확인하던 경찰관 B 씨는 A 씨에 대해 향정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돼 지명수배 중인 사실을 확인하고 즉시 하차를 요구했다.

 

A 씨가 하차 요구에 응하지 않고 문을 잠근 뒤 차를 출발시키려고 하자 B 씨는 운전석 창문으로 몸을 들이밀어 A 씨의 상체와 팔을 붙잡고 운전석 문을 열고 차 시동을 끄려고 시도했다. 그러자 A 씨는 그대로 차량 속도를 높여 B 씨를 운전석에 매단 채 약 100m를 주행하다 B 씨를 도로 바닥에 떨어뜨려 다치게 했다.

 

재판에서는 경찰이 피의사실 요지와 체포의 이유, 변호인 선임권리 등 이른바 ‘미란다 원칙’과 체포영장이 발부됐다는 사실을 A 씨에게 고지하지 않은 채 하차를 요구하며 제압하려 한 것이 ‘적법한 직무집행’인지가 쟁점이 됐다.

 

1심은 “A 씨에게 피의사실 요지와 체포영장이 발부됐음을 고지하지 않은 채 팔을 붙잡거나 차 시동을 강제로 끄려고 시도한 것은 경찰관직무집행법에서 정한 불심검문의 범위를 벗어나 적법한 직무집행으로 보기 어렵다”며 A 씨의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3부(당시 재판장 김우수 부장판사, 김진하·이인수 고법판사)는 A 씨가 급속 페달을 밟아 언제든 도주할 수 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경찰관에게 피의사실 요지와 체포영장 발부 사실을 밝힐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으므로 사전에 체포영장 발부 사실 및 피의사실을 고지해야 하는 원칙의 예외라고 판단하고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혐의를 유죄로 뒤집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은 체포영장을 소지할 여유 없이 우연히 피의자를 만나게 된 경우로, 체포영장을 제시하지 않더라도 피의사실의 요지와 체포영장이 발부됐음을 고지하고 체포영장을 집행할 수 있는 예외적 상황인 ‘급속을 요하는 때’에 해당한다"며 "경찰관이 체포영장을 제시하지 않고 피고인을 체포하려고 시도했다고 해서 위법한 공무집행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급속을 요하는 때’의 피의사실 고지는 체포를 위한 실력행사에 들어가기 이전에 미리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달아나는 피의자를 쫓아가 붙들거나 폭력으로 대항하는 피의자를 실력으로 제압하는 경우에는 붙들거나 제압하는 과정에서 고지하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일단 붙들거나 제압한 후에 지체 없이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찰관이 피고인의 도주를 저지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피고인에 대해 피의사실 요지 등을 고지하지 못하게 됐던 것이 인정됨에도, 사전 고지의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피의사실 요지 등을 고지하지 않은 채 체포를 위한 실력행사에 나아간 것을 적법한 공무집행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1심 판결은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대법원도 항소심 판결을 "체포 절차의 적법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유죄를 확정했다.

 

홍윤지 기자
 
2024-06-12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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