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소유자가 지인의 집 앞에 차를 대고 잠을 자던 중 지인이 몰래 차를 운전하다 사람을 쳤다면 소유자에게도 책임이 있을까. 차량 소유자가 차량 운행에 대한 지배와 이익을 완전히 상실하지 않았다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민사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지난달 30일 A 보험회사가 B 씨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2024다204221).
2019년 10월경 B 씨는 알고 지내던 C 씨의 집 앞에 자동차를 주차한 뒤 다음날 새벽까지 인근 술집에서 C 씨와 함께 술을 마시고 C 씨의 집에 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오전, C 씨는 자동차 열쇠를 B 씨 몰래 가져가 술에 취한 상태로 자동차를 운전했다. 일방통행 도로 반대 방향으로 운전하던 C 씨는 후진하던 중 차 뒤쪽에서 걸어오던 행인 D 씨를 차로 들이받았고 D 씨의 보험사인 A 사는 D 씨에게 치료비 등으로 보험금 1억4600만 원을 지급했다.
A 사는 “B 씨는 사고 차량의 소유자로서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자동차손배법)’ 제3조의 ‘자기를 위하여 자동차를 운행하는 자’에 해당하므로 사고로 D 씨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D 씨로부터 손해배상 청구권을 대위(대신) 취득한 자사에게 구상금 1억46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이 사건에선 지인의 집에 차를 두고 술을 마시고 잠을 자던 중 지인이 운전했을 경우 차량 소유자에 대한 운행지배를 인정해 운행자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1심은 원고(A 보험사) 승소 판결했으나 항소심은 이를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 B 씨의 과실이 중대해 C 씨의 운전을 용인했다고 볼 수 있거나 사고 당시 차량에 대한 피고의 운행지배와 운행이익이 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C 씨가 차를 운전하기 전 자동차 열쇠를 쉽게 찾아 바로 차를 운전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C 씨가 비교적 가까운 거리를 짧은 시간 운전했을 뿐이므로 자동차 반환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가 사고 발생 무렵에는 C 씨를 절도 혐의로 고소하지 않다가 나중에야 C 씨를 고소한 점 등에 비춰 보면 피고가 사고 당시 자동차에 대한 운행지배와 운행이익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