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 집단 소송 진행시
차 주인 과실 아님을 증명하면
차량 제조사 등에 제조물 책임
인천 서구 청라동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지난 1일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로 입주민 피해가 커지면서 법적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 관심이 뜨겁다. 화재로 인해 파손된 차량이 140여 대에 이르는 데다 화재로 발생한 연기가 아파트 단지를 덮치며 주민들이 대피하는 과정에서 영유아를 포함한 입주민 23명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되는 등 피해가 컸다.
경찰이 5일 현장 폐쇄회로(CCTV)를 분석한 결과 벤츠 차량은 사흘간 이동 없이 한 곳에 주차돼 있었고 외부 충격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전기차 차량 자체에 결함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법적 공방이 예상된다. 화재 차량이 전소 돼 발화 원인 규명이 어려운 점도 변수이 다.
피해를 본 차주들은 계약 내용에 따라 자차 자동차보험이나 화재보험을 통해, 화재로 피해를 본 입주민은 아파트 단체화재보험을 통해 보상받을 예정이다. 선(先) 보상이 진행되면 해당 보험사들은 처음 불이 난 벤츠 전기차의 보험사와 ‘독일 벤츠 본사’와 차를 수입한 ‘벤츠 코리아’를 상대로 구상권 청구를 할 수 있다. 다만 피해 규모가 큰 만큼 배상 책임 정도를 놓고 벤츠 차주의 보험사와 벤츠 본사가 화재 책임 자를 가리기 위한 법적 공방을 벌일 수 있다.
이와 별개로 피해자들이 집단으로 벤츠를 상대로 한 소송을 진행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제조물책임법상 피해 차주(원고)가 벤츠(피고)를 상대로 제조물 결함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전기차 차주가 차량을 정상 사용했고 과실이 없다’는 것을 피해 차주들이 밝혀야 한다.
이를 증명하면 제조물을 공급할 당시 해당 제조물에 결함이 있었고 그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될 수 있다. 다만 제조업자인 벤츠가 제조물의 결함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인해 그 손해가 발생한 사실을 증명한 경우에는 추정이 인정되지 않아 벤츠 측도 맞설 것으로 보인다.
김익현(46·사법연수원 36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전기차 차량을 차주가 정상적으로 사용했고 과실이 없었다는 점 등을 피해 차주가 입증해 제조물 결함 추정이 인정되면 제조사가 차량 결함이 없음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황다연(43·39기) 법무법인 혜 변호사는 “인천 전기차 화재 사고에서 CCTV가 있기는 하지만 벤츠 전기차량이 전소된 만큼 발화 원인의 규명이 어려울 수 있다”며 “차량 구조가 복잡한 만큼 피해를 입은 차주가 입증 추정을 끌어내는 데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화재를 계기로 ‘전기차 화재 방지법’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총 160건이다. 연도별 화재 건수를 보면 △2018년 3건 △2019년 7건 △2020년 11건 △2021년 24건 △2022년 43건 △2023년 72건으로 매년 증가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기차 화재는 온도가 1000℃가 넘고 골든타임이 짧다”며 “전기차 화재가 발생하면 인명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법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해외는 관련 법안 마련에 앞장서고 있다. 영국은 지난해 ‘전기차 안전가이드라인’을 마련해 폐쇄형 주차장과 스프링클러 등 전기차 화재 예방 장치를 도입했다. 미국도 소방안전법규(NFPA)를 개정해 주차장에 스프링클러 자동 시스템 설치를 의무화했다.
하종선(69·11기) 법률사무소 나루 변호사는 ”인천 전기차 화재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발생한 사고로 전기차 보급과 함께 아파트 내 전기차 화재 예방 논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앞으로 또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입법적 변화가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진영 기자 2024-08-07 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