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 2013나2031173
충동적 아니라 '준비된 자살'… 환자였어도 보험금 지급 대상 아냐
서울고법, 채무부존재 확인 보험사 승소판결
우울증을 앓다 자살했더라도 유서에 채무내역 등을 상세히 기재했다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상태였다고 추단할 수 있으므로 보험금 지급 대상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다. 이른바 '준비된 자살'에 대해서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이다.
서울고법 민사7부(재판장 이상주 부장판사)는 동부화재해상보험이 자사의 보험상품에 가입하고 자살한 이 회사 보험설계사 정모씨의 유족을 상대로 "심신상실 상태에서 자살한 것이 아니므로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며 낸 채무부존재 확인소송 항소심(2013나2031173)에서 최근 1심과 같이 원고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정씨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자살 직전에 중증의 우울증 상태였던 것이 자살의 한 원인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씨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자살을 감행한 것으로 보기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극단적인 우울증 탓에 자살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고 우발적이고 순간적인 자살충동보다는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에 의해 미리 준비된 자살 계획을 실행에 옮긴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정씨가 평소 죽고 싶단 말을 자주 했고 △유서에 그동안 갈등관계에 있던 남편에 대한 원망과 당부, 자신의 채무내역을 기재한 사실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농약을 구해 마시고 △이불 위에 반듯하게 정자세로 누워 자살한 점 등을 근거로 이같이 판단했다.
동부화재에 근무하던 정씨는 5년간 우울증을 앓다가 2012년 농약을 마시고 자신의 집 안방에서 자살했다. 정씨 유족은 보험회사가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자 "우울증으로 인한 심신상실 상태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보험금지급 청구소송을 냈다. 보험회사 측은 "약관에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를 보험금 지급 사유로 규정하고 있지만 정씨는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보험금 지급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며 반소를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