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차량에 치여 사망… 보험사 책임 없다
야간에 길가에 정차한 뒤 비상등을 켜지 않고 전기공사를 하던 작업자가 음주운전 차량에 부딪쳐 사망한 경우에는 보험사에 책임이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민사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한화손해보험이 DB손해보험을 상대로 낸 구상금 소송(2016다259417)에서 최근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 등 3명은 2011년 10월 일몰시간 이후 전북 진안군 국도 편도 1차로에서 전선 지중화 작업을 했다. 당시 이들이 타고 온 작업차량은 차폭등과 미등이 켜지지 않은 상태였고, 차량 좌측 전방부가 도로 안쪽을 향하도록 도로 우측에 비스듬히 정차해 약 1m가량 도로를 침범한 상태였다.
작업을 마친 A씨 등은 차량에 탑승하기 위해 도로 위를 걷던 중 만취 운전자가 몰던 무보험 차량에 부딪쳐 현장에서 사망했다. A씨와 '무보험자동차에 의한 상해 담보부 자동차 보험계약'을 맺은 DB손해보험은 유족들에게 보험금 1억5000여만원을 지급했다. DB손해보험은 이후 A씨와 같은 보험을 체결한 한화손해보험을 상대로 중복보험에 따른 분담금 절반을 청구했고, 한화는 DB에 분담금 7500여만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이후 한화는 "사고는 음주운전 차량 뿐만 아니라 비상등을 켜지 않고 정차해있던 작업 차량의 과실도 있으므로 우리는 무보험 차량으로 인한 사고를 보상할 책임이 없다"며 DB를 상대로 앞서 지급한 분담금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냈다.
“점등하고 공간 확보 후
주차했으면 필요 조치 가능”
재판에서는 일몰시간 후 비상등을 켜지 않고 정차한 작업차량의 과실과 교통사고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재판부는 "도로교통법에 따라 모든 차의 운전자는 밤(해가 진 후부터 해가 뜨기 전까지)에 고장이나 그 밖의 부득이한 사유로 도로에서 차를 정차 또는 주차하는 경우 차폭등과 미등을 켜 다른 차량의 운전자들이 주정차된 차량을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차도와 보도의 구별이 없는 도로의 경우 도로의 오른쪽 가장자리로부터 중앙으로 0.5m 이상의 거리를 두어 보행자가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보험사 구상금청구 소송
원고패소 원심 파기
이어 "비록 일몰 후이지만 사물이 보이는 시각이었다고 할지라도 작업차량이 도로교통법에 따라 점등을 했을 경우 식별력이 현저히 증가했을 것"이라며 "가해자가 비록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운전을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피고 차량들이 점등을 했을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비교해 가해자가 보다 멀리서 피고 차량들을 발견하거나 그에 따라 감속 등의 조치를 취했을 가능성이 없었다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작업차량이 우측 0.5m이상 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피해자들이) 좌측 도로 위를 보행하다 사고를 당했다"며 "작업차량이 규정에 따라 점등을 하고 우측 공간을 확보해 정차했다면 가해차량이 보다 멀리서 피해자차량을 발견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앞서 1심은 "작업차량이 비상등을 켰으면 음주운전 차량이 작업차량 충분히 피해 운행했을 가능성 있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하지만 2심은 "일몰 이후였어도 사물의 식별이 어렵지 않은 시각이었던 만큼 비상등을 켜지 않았더라도 일반 운전자였다면 정상적인 운행을 했을 것"이라며 원고패소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