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무죄 선고 원심 파기환송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근처를 지나는 운전자는 보행자를 발견한 즉시 정차할 수 있도록 안전 운전해 사고를 방지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난달 16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도주치상)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2022도1401).
2020년 4월 오후 4시30분 A씨는 봉고 트럭을 몰고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에서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지나다 그 근처를 무단횡단하는 9살 여아를 발견해 급제동했다. 하지만 아이의 오른쪽 무릎과 부딪혀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혔지만 구호 조치를 하지 않고 도주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가 괜찮냐고 묻자 아이가 괜찮다고 답한 후 절뚝거리며 다른 곳으로 걸어갔고, A씨는 자신의 인적사항 등을 알려주지 않은 채 차를 몰고 현장을 벗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A씨 혐의를 유죄로 보아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사고의 발생을 예견하거나 회피할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횡단보도 안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아이가 넘어지면서 상해가 발생한 것으로 보여 피해자 진술만으로 A씨의 차량이 아이의 신체를 충격했다고 단정하기 어려워 A씨가 차량을 급정거함으로써 사고를 방지할 수 있을 정도로 서행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또 A씨가 주의를 다했다면 피해자의 존재를 좀 더 일찍 인식하고 피해자가 넘어지는 경우를 방지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사고 지점 부근의 도로 상황, 사고 발생 시각, 사고 당시의 교통량, 횡단보도 부근의 보행자 현황 등을 종합해 볼 때 트럭을 운전하던 A씨로서는 횡단보행자용 신호기가 설치돼 있지 않은 횡단보도 구간을 통과한 직후 그 부근에서 도로를 횡단하려는 보행자가 흔히 있을 수 있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으므로 무단횡단하는 보행자를 발견한 즉시 안전하게 정차할 수 있도록 제한속도 아래로 속도를 더욱 줄여 서행하고 전방과 좌우를 면밀히 주시해 안전하게 운전함으로써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인의 트럭 앞 범퍼 부위로 피해자의 우측 무릎을 충격해 피해자를 도로에 넘어지게 하였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고, 피고인의 트럭이 피해자를 직접 충격한 것이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피해자가 도로에 넘어진 직접적인 원인은 횡단보도를 통과하면서 감속하지 않은 피고인의 차량이 급정거한 때문"이라며 "트럭이 피해자를 직접 충격하지 않았더라도 피고인이 횡단보도 부근에서 안전하게 서행했다면 사고 발생을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것이므로 A씨의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과 사고 발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