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 2014나2050607
기초생활수급자인 탈북자가 12개 보험상품에 가입해 8500여만원의 보험금을 탔더라도 보험사기로 볼 수는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홀몸인 탈북자가 타지에서 자신의 유일한 재산인 '몸(신체)'을 지키기 위해 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어 보험계약을 무효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서울고법 민사20부(재판장 양현주 부장판사)는 동부화재해상보험이 "부당하게 보험금을 타낼 목적으로 보험계약을 체결해 무효이므로 지급한 보험금 1000만원을 돌려달라"며 탈북자 이모씨를 상대로 낸 보험금반환소송(2014나2050607)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1심을 취소하고 최근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아무런 연고 없이 몸 하나만을 의지해 생계를 유지하다보니 보험의 필요성이 절실했고, 그 와중에 홈쇼핑 보험 광고를 보게 되면서 충분한 보장을 받기 위해 여러 개의 보험에 중복가입을 하게 됐을 뿐"이라는 이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씨가 12건의 보험에 가입해 383일간 입원치료를 받고 8500여만원의 보험금을 타낸 사실을 볼 때 보험금을 부정하게 취득할 목적으로 가입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기는 하지만, 보험계약별로 입원일당 보험금 액수가 1만~5만원에 불과하다"면서 "탈북자로서 대한민국 사회나 경제관념에 능숙하지 못한 이씨의 사정을 고려하면 가입경위를 수긍하지 못할 바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매달 70만~90만원의 기초생활급여를 수령했을뿐만 아니라 식당 보조일로도 일정 수입을 올렸을 개연성이 있어 월 20만원의 전체 보험료를 납입할 정도의 여력은 있었다"며 "이씨가 받은 수술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적정' 판정을 내렸으므로 이씨가 과잉입원을 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2007년 탈북한 이씨는 2009년 9월부터 2014년 4월까지 12개의 보험에 가입한 뒤 관절 통증 등으로 수술을 받고 총 383일간 입원치료를 받아 보험회사 10곳으로부터 8500여만원을 받았다. 이씨가 가입한 보험사중 한 곳인 동부화재는 "이씨가 2010년 상반기에만 8개의 보험에 집중적으로 가입했다"며 소송을 냈다.
1심은 "이씨가 체결한 보험계약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 질서에 반해 무효"라며 "이미 받은 보험금을 모두 반환하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