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 입원’ 전환 … 병원 퇴원 조치는 적법
서울중앙지법, 유족패소 판결
정신병원이 '강제 입원 환자'를 가족들의 동의 없이 '자의 입원 환자'로 전환하고 퇴원시켰는데 환자가 사망한 경우 유족은 병원 측에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서울중앙지법 민사207단독 경정원 판사는 지난 8월 23일 A 씨의 어머니가 서울시와 B 의료법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21가단5084894)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A 씨는 2019년 10월 B 의료법인이 운영하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당시 A 씨의 입원은 A 씨의 누나인 C 씨가 병원에 보호 입원을 신청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소견을 토대로 이뤄졌다. 이후 이 병원은 A 씨에 대한 입원 연장을 청구해 기초자치단체장으로부터 입원기간 연장 통지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병원은 2020년 2월 "C 씨가 보호의무자로서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A 씨의 보호 입원을 '자의 입원 신청'에 따른 자의 입원으로 전환했다. 이후 병원은 A 씨가 퇴원 요청을 하자 주치의 면담을 거쳐 같은 해 3월 퇴원 조치했다. A 씨는 퇴원한 지 1주일 무렵 서울의 한 하천변 산책로에서 추락해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A 씨의 어머니는 "B 의료법인은 정당한 이유 없이 임의로 자의 입원으로 전환하고 가족들 반대에도 불구하고 퇴원시켰다"며 "병원의 보호의무 위반 또는 불법행위로 A 씨가 퇴원 직후 정신질환이 악화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며 소송을 냈다.
경 판사는 "A 씨의 어머니는 A 씨가 병원에 입원할 당시 치매 등을 이유로 요양병원에서 생활하고 있었다"며 "A 씨의 누나인 C 씨가 보호 입원을 신청할 수 있는 보호의무자로서 민법 제974조의 부양의무자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생계를 같이하는 친족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민법 제974조는 '직계혈족과 배우자, 생계를 같이 하는 기타 친족 간에는 서로 부양의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다. 또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제39조 제1항은 '민법에 따른 후견인 또는 부양의무자는 정신질환자의 보호의무자가 된다'고 정하고 있다.
경 판사는 "생계를 같이 하는 친족인지는 한 세대 내에서 거주하거나 환자에게 경제적 부양을 제공하는 등 동일한 생활자금으로 생활해왔는지에 따라 판단돼야 하는데, 증거만으로는 C 씨가 A 씨와 동일한 세대에서 거주하거나 경제적 지원을 했다고 보기 어려워 부양의무자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C 씨가 보호의무자로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B 의료법인이 A 씨에 대한 보호 입원을 자의 입원으로 전환하거나 A 씨의 의사에 따라 퇴원시킨 조치는 적법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 씨가 하천변 산책로에서 추락하는 순간을 목격한 사람은 없고, 최초 발견자는 경찰 조사 당시 A 씨가 고의로 떨어진 것인지 실수로 떨어진 것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며 "부검에서도 의도적 사고인지 여부에 관해 미상이라는 의견이 제시돼 증거만으로는 A 씨가 퇴원 후 정신질환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 인정하기도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한 의료전문 변호사는 "판결은 법적 책임 유무를 법 규정에 따라 판단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의료적 입장에선 환자의 의학적 증상과 입원 경위에 비춰볼 때 정해진 규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고 행정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과연 진정으로 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인지 의문일 수 있다"며 "다만 환자를 권리 주체로 보고 존중하는 최근의 법적 시각에서는 법률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걸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행위능력 등을 무시하고 퇴원조치를 불가능하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