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방법원 2018가합1822
서울중앙지법, 유족승소 판결
20대 청년 건물서 추락사… 자살로 단정 어렵다
20대 남성이 '잘 있어라. 나 간다'는 실연의 마음을 표시한 문자를 남긴 뒤 건물에서 떨어져 사망한 경우 자살로 볼 수 있을까. 이 같은 문자를 남긴 후 사망했더라도 반드시 자살로 단정할 수 없으므로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재판장 정도영 부장판사)는 최근 태국 파타야의 한 콘도에서 추락해 사망한 20대 남성 A씨의 어머니 B씨가 현대해상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소송(2018가합1822)에서 "현대해상은 B씨에게 2억7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2017년 6월 태국 파타야로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을 떠난 A씨는 두 달 뒤 현지의 한 콘도 22층 옥상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사고 직전 A씨는 인턴십에 함께 참여한 여학생과 주고 받은 문자에서 '그럼 내가 싫다고 말해줘, 평생 보기 싫다고. 포기하게 해주라 제발. 잘있어라 나 간다. 너도 정말 이기적이다 한번만이라도 얼굴이라도 보여주지'라는 말을 남겼다. 2017년 11월 손해사정업체가 작성한 현장사진 자료에 따르면 A씨는 새벽 1시 30분경 옥상으로 올라가 휴대전화기를 바닥에 두고 128㎝ 높이의 난간에서 슬리퍼를 신은 채 추락한 것으로 보고됐다. A씨는 당시 현대해상에 가입금액 1억원인 상해사망담보특약, 가입금액 1억6000만원인 상해사망추가담보특약 등을 내용으로 한 보험에 가입한 상태였다.
보낸 문자는 대화 마무리 할 때
흔히 사용되는 말
A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기분전환을 위해 콘도 옥상에 올라갔다가 실수로 추락해 사망한 사고일 뿐 고의에 의한 것이 아니므로 보험금을 지급하라며 현대해상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현대해상은 "보험금 지급사유에 해당하려면 '상해의 직접결과로써 사망한 경우'여야 하고, 상해는 '보험기간 중 발생한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신체에 입은 상해'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A씨가 사고 직전 여자친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용 등을 고려하면 A씨가 옥상에서 고의로 투신해 자살한 것으로 보이므로 상해의 우연성 요건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맞섰다.
재판부는 자살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비록 A씨가 옥상 난간에 올라가는 등 스스로 위험한 상황을 초래한 중대한 과실이 있더라도 해당 사고는 급격하고 우연한 외래의 사고"라며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으며 평소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거나 정신과 계통의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고 볼 자료가 없고 A씨가 평소 작성해놓은 메모 등을 보면 영어공부, 각종 자격증 취득 등 취업준비를 하고 있었을뿐만 아니라 자전거 국토종주나 트레킹 등 도전적인 스포츠를 목표로 삼고 있었던 등 모험심이 많은 사람으로 보여 심적으로 나약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삶을 좌우할 정도
심각한 갈등 있다고 볼 수 없어
이어 "자신이 좋아하는 여학생으로부터 만남을 거절당하고 관계가 끝나면서 심리적 상처를 받았을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여학생과의 관계로 삶이 좌우될 정도의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잘있어라 나 간다'는 메시지는 대화를 마무리하거나 이별을 고할 때 흔히 사용되는 말이어서 유서나 죽음을 암시하는 기록 등이 전혀 없는 이 사건에서 해당 메시지가 죽음을 암시한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씨가 기분전환을 위해 난간에 걸터앉았을 가능성이 있고 그때 무게중심을 잃어 추락했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며 "A씨가 사망을 목적으로 난간에 걸터앉거나 올라갔다고 볼 자료가 없고, 성격이나 성향에 비춰봤을 때 사고를 예견하지 못한 채 우발적으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