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자)
【판시사항】
[1] 불공정한 법률행위의 요건 및 판단 기준
[2] 교통사고로 피해자가 사망한 후 5일만에 피해자의 처가 보험회사와 사이에 체결한 부제소 합의가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해당한다고 본 사례
【판결요지】
[1] 민법 제104조에 규정된 불공정한 법률행위는 객관적으로 급부와 반대급부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이 존재하고, 주관적으로 위와 같이 균형을 잃은 거래가 피해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을 이용하여 이루어진 경우에 성립하는 것으로서, 약자적 지위에 있는 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을 이용한 폭리행위를 규제하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할 것이고, 불공정한 법률행위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인 궁박, 경솔, 무경험은 모두 구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중 일부만 갖추어져도 충분하며, 여기에서 '궁박'이라 함은 '급박한 곤궁'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경제적 원인에 기인할 수도 있고, 정신적 또는 심리적 원인에 기인할 수도 있으며, 당사자가 궁박의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는 그의 신분과 재산상태 및 그가 처한 상황의 절박성의 정도 등 제반 상황을 종합하여 구체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2] 교통사고로 스포츠용품 대리점과 실내골프연습장을 운영하던 피해자가 사망한 후 망인의 채권자들이 그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하여 법적 조치를 취할 움직임을 보이자 전업주부로 가사를 전담하던 망인의 처가 망인의 사망 후 5일만에 친지와 보험회사 담당자의 권유에 따라 보험회사와 사이에 보험약관상 인정되는 최소금액의 손해배상금만을 받기로 하고 부제소 합의를 한 경우, 그 합의는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해당한다고 본 사례.
【참조조문】
【참조판례】
[1][2]
대법원 1987. 5. 12. 선고 86다카1824 판결(공1987, 963),
대법원 1998. 1. 23. 선고 97다42601 판결 /[1]
대법원 1996. 6. 14. 선고 94다46374 판결(공1996하, 2141),
대법원 1997. 7. 25. 선고 97다15371 판결(공1997하, 2698),
대법원 1998. 3. 13. 선고 97다51506 판결(공1998상, 1035)
【전문】
【원고,상고인】
정해자 외 4인
【피고,피상고인】
제일화재해상보험 주식회사 (소송대리인 변호사 이기창)
【원심판결】
서울지법 1998. 10. 1. 선고 98나7888 판결
【주문】
원심판결 중 원고 정해자, 원고 정연희, 원고 정종욱에 대한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서울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원고 김옥순, 원고 정수정의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원고 김옥순과 피고 사이의 상고비용은 원고 김옥순의, 원고 정수정과 피고 사이의 상고비용은 원고 정수정의 부담으로 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원고 정해자, 정연희, 정종욱의 상고에 대한 판단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소외 망 정상균은 1994. 8. 18. 07:10경 충북 청원군 부용면 외천리 소재 경부고속도로에서 소외 최남수 운전의 광주 1마8307호 그랜져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반대차선에서 중앙선을 넘어온 소외 주식회사 소유의 화물트럭과 충돌하여 현장에서 사망한 사실, 위 망인의 처인 원고 정해자는 남편인 위 망인이 사고로 사망한 때로부터 불과 5일 후인 1994. 8. 23. 위 화물트럭을 피보험차량으로 하는 자동차종합보험계약의 보험자인 피고와의 사이에 위 사고로 인한 손해배상금으로 금 34,836,340원을 지급받고 이후 민, 형사상의 소송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다는 취지의 합의를 한 사실, 위 망인은 1947. 9. 24.생으로서 사고 당시 광주스포츠란 상호의 스포츠의류 대리점과 골프연습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위 교통사고로 갑자기 사망하자 망인의 채권자들이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하여 법적 조치를 취할 움직임이 있었고, 이를 알게 된 원고 정해자는 주변의 권고를 듣고 서둘러 손해배상금을 받아내기 위하여 피고와 위와 같은 합의를 한 사실, 위 합의에 의한 손해배상금은 도시일용노임을 기초로 하고, 가동연한을 만 55세로 하여 산정한 금액으로서 피고의 보험약관상 인정되는 최소금액의 손해배상금인 사실을 알 수 있다.
원심은, 원고 정해자와 피고 사이의 위 합의를 원고 정해자가 본인 및 미성년의 자녀인 원고 정연희, 정종욱의 법정대리인의 자격에서 체결한 부제소합의로 인정하는 한편, 위 부제소합의가 사고일로부터 불과 5일만에 이루어졌다는 사정만 가지고 그것이 원고 정해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을 이용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단정하기에 부족하고, 오히려 판시와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위 부제소합의는 원고 정해자가 망인의 수입을 어느 정도 알면서도 망인의 부채로 말미암아 일어날지도 모르는 법적 조치를 피하기 위하여 도시일용노임에 기초한 일실수입 금액을 넘는 부분의 손해배상을 스스로 포기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는 이유로 원고 정해자, 정연희, 정종욱의 불공정법률행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위 원고들의 불공정법률행위 주장에 관한 원심의 판단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수긍하기 어렵다.
민법 제104조에 규정된 불공정한 법률행위는 객관적으로 급부와 반대급부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이 존재하고, 주관적으로 위와 같이 균형을 잃은 거래가 피해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을 이용하여 이루어진 경우에 성립하는 것으로서, 약자적 지위에 있는 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을 이용한 폭리행위를 규제하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할 것이고, 불공정한 법률행위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인 궁박, 경솔, 무경험은 모두 구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중 일부만 갖추어져도 충분하며, 여기에서 '궁박'이라 함은 '급박한 곤궁'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경제적 원인에 기인할 수도 있고, 정신적 또는 심리적 원인에 기인할 수도 있으며, 당사자가 궁박의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는 그의 신분과 재산상태 및 그가 처한 상황의 절박성의 정도 등 제반 상황을 종합하여 구체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1998. 3. 13. 선고 97다51506 판결, 1998. 1. 23. 선고 97다42601 판결, 1996. 6. 14. 선고 94다46374 판결 등 참조).
기록에 의하면 원고 정해자는 전업주부로 가사를 전담하고 가계수입은 전적으로 남편인 망인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미성년의 두 자녀를 남긴 채 위 망인이 갑자기 교통사고로 사망하였고, 위 망인이 사망하자마자 원고 정해자로서는 내용을 잘 알 수 없었던 망인의 채권자들이 채권을 주장하면서 손해배상금에 법적 조치를 취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며, 망인의 동서로서 사회경험이 많은 소외 김성호가 친구를 통하여 피고 회사 광주지점의 보상과장과 접촉하면서 적은 금액이라도 빨리 합의하여 보상금을 수령하여야 채권자들의 법적 조치를 피할 수 있다고 하면서 합의를 권유하자, 원고 정해자는 망인의 사망 후 불과 5일만에 남편의 소득을 입증하여 정상적으로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금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돈을 받고 위와 같은 합의를 하기에 이르렀는데 곧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합의일로부터 불과 9일 후인 1994. 9. 1. 피고에게 위 합의가 궁박한 상태에서 경솔하게 이루어진 합의이므로 무효이거나 취소한다는 취지의 내용증명우편을 보낸 사실을 알 수 있는바,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위 합의 당시 원고 정해자는 남편을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잃게된 데서 오는 정신적 충격, 생계 수단을 잃은 상태에서 미성년의 두 자녀를 양육하여야 하는 상황에서 쉽게 확인할 수 없었던 남편의 사업상 채권채무관계로 인하여 손해배상금마저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빠져 있는 정신적 궁박 상태에 있었으며, 그러한 정신적 불안감 속에서 정당한 손해배상금이 얼마인지를 따져볼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이, 사회경험이 많은 위 김성호가 권유할 뿐 아니라 친구를 통하여 피고 회사 광주지점의 보상과장이 호의로 여러 편의까지 제공하고 있으므로 위와 같은 합의를 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고 섣불리 믿은 채 위와 같이 정당한 손해배상금에 턱없이 모자라는 금액에 합의를 하게 되었으며, 피고 회사 광주지점의 보상과장은 위 김성호에게 망인에 대한 채권자들이 손해배상금에 대한 문의를 하고 있어서 법적 조치를 취할 위험성이 있음을 알려주면서 피고 회사에서 제시하는 금액에 합의하면 채권자들의 법적 조치가 있기 전에 신속히 처리하여 줄 수 있다는 것과 채권자들의 연락을 받은 광주지점 아닌 대전지점과 합의를 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할 수 있음을 알리면서 신속한 합의를 제안하였으므로 피고로서도 원고 정해자의 궁박한 상태를 인식하면서 이를 이용하여 보험약관상의 최소금액에 위 합의를 이끌어 냈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이와 달리 위 합의가 원고 정해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을 이용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으므로 이에는 분명 채증법칙을 위배하여 사실을 오인하였거나 민법 제104조 소정의 불공정 법률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지적하는 논지는 정당하다.
2. 원고 김옥순, 정수정의 상고에 대한 판단
원고 김옥순, 정수정의 상고에 대하여는 상고장 및 상고이유서에 아무런 상고이유의 기재가 없고 달리 상고이유서 제출기간 내에 상고이유를 제출하지도 않았다.
3. 그러므로 원심판결 중 원고 정해자, 정연희, 정종욱에 대한 부분을 파기하여 이 부분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하고, 원고 김옥순, 정수정의 상고를 기각하며, 이 부분 상고비용은 패소자들의 각 부담으로 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