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13도4936
도로교통법 위반 적용 못해
대법원, 벌금 선고 원심 파기
운전자가 다른 차량을 스치는 정도의 사고를 낸 뒤 별다른 사후조치 없이 현장을 떠났더라도 도로교통법 위반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지난달 23일 운전 도중 다른 차와 부딪치는 사고를 내고도 사후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도로교통법상 사고후 미조치, 특가법상 도주차량) 등으로 기소된 백모(59)씨에 대한 상고심(2013도4936)에서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도로교통법이 사고후 조치를 취하지 않은 운전자를 처벌하는 취지는 사고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물을 제거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신속히 취하게 함으로써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를 방지·제거해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함을 그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 피해자의 물적 피해를 회복시켜 주기 위한 규정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 승용차의 파손된 정도가 가벼운데다 사고 잔해물이 도로에 남지 않았던 점, 퇴근 시간에 비까지 겹쳐 차량이 정체 중이고 전방의 신호마저 바뀌어 피해자 최씨가 추격을 단념하고 곧바로 경찰에 사고신고를 한 점을 감안하면, 백씨가 사고로 인한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를 방지·제거해 원활한 교통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사고현장을 이탈했다고 해서 도로교통법상 사고후 미조치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백씨는 지난해 6월 대구 달서구 5차선 도로에서 자신의 카니발 차량을 운전하다가 차로를 변경하는 최씨의 SM5 승용차 옆 부분을 스치듯이 부딪치는 사고를 냈다. 백씨는 사고직후 차에서 내려 3~4분간 승용차 상태를 확인했고, 최씨도 차에서 내려 사고현장을 확인하고 백씨가 운전하던 차의 차량번호를 촬영했다. 최씨가 승용차를 도로변으로 옮기는 사이 백씨는 연락처를 남기지 않고 현장을 떠났고, 사고후 조치를 취하지 않고 인적사항을 남기지 않은 채 도주한 혐의로 기소됐다.
1·2심은 최씨가 부상을 입지 않아 특가법상 도주차량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으나, "교통량이 많은 도로에서 백씨가 사고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최씨만 남겨둔 채 현장을 떠나는 바람에 교통상 위험이 발생했다"며 도로교통법 위반죄를 적용해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